기타 “그리스도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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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법”
이 법은 상호간의 짐을 질 때에 성취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은 짐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사 53:6, 4)다.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져야 하며 그릇된 길로 가고 타락한 자들을 위하여 그와 동일한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 18). 그리스도는 가혹한 시험을 받는다는 것이 어떠함을 알았고 그 시험을 이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비록 “죄를 알지도 못하”(고후 5:21)시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가지고 가셔서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죄를 그리스도 자신의 것으로 자백하셨다. 정확히 그렇게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신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그의 마음을 털어 놓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어떻게 고난을 받으셨는가를 이야기하시며 더 나아가 모든 고난과 고통과 슬픔과 수치를 알고 계신다. 이와같이 하여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고 우리의 신뢰를 산다. 우리와 똑같은 삶을 통과하시고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할 길을 우리에게 말씀할 때에 즐거이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경험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므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사업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이다. 자신을 죄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죄인들을 회복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죄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가서 “도대체 이런 짓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생전에 그같은 일을 해 본적이 없다.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그와같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나님은 한 바리새인, 단 한 사람의 바리새인을 사도가 되도록 택하셨지만 그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시인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내보내지 않았다(딤전 1:15 참조). 죄를 시인하는 것은 굴욕적인 일이다. 그렇다.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이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구세주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의 기쁨을 같이 나누기를 원한다면 그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아야 한다. 이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오직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고 보여줄 수 있다. 왜냐하면 죄를 자백하는 자는 죄로부터 씻음을 받으며 이렇게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샘으로 인도할 수 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님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이 말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에 유의하라. 이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된 줄로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한 것이다. 일개인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모두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우리가 무엇인가 된 줄로 생각한다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아 주의 사업을 훼손시키고 있다. 그리스도의 법을 기억하라.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었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비웠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비웠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하나님이 크실 뿐이다.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시 39:5). 하나님만이 참되고 모든 인간은 거짓될 뿐이다. 우리가 이것을 시인하고 이것을 의식하면서 살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충만하게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을 수 있으며 그리함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수 있다. “불법의 사람”(살후 2:3, 4)은 자신을 높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
자기의 짐을 지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임이라.” 이 말씀은 2절과 상반되는가? 결코 아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할 때에 이것은 우리의 짐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라는 말이 아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짐을 주님에게 맡겨 버려야 할 것이다(시 55:22 참조). 주님은 온 세계와 전 인류의 짐을 지시되 단체로 지지 아니하고 각 개인으로 지신다. 우리의 짐을 주님에게 맡길 때에 손에나 마음에 모아 가지고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에게 내던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죗짐과 고통, 근심, 걱정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전보다 더 무겁게 머리 위로 굴러오는 것을 느끼고 마침내는 거의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문제는 무엇인가? 단지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들이 그 구렁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느끼었다는 것이다. “아직 연약”한 사람은 자기의 짐을 팔 길이만큼도 던질 수 없으며 우리가 주님을 팔 길이만큼한 곳에 모시는 한, 그 무거운 짐에서 풀려나와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유일한 기둥이요 우리의 생명이시며 그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거동을 하게 하는 분으로 시인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더 이상 우리 자신을 기만하지 않는 것을 시인할 때에 우리의 짐을 그리스도에게 맡길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는 그 짐을 어떻게 처리할 줄을 아시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멍에를 같이 할 때에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법을 배운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짐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 짐을 지는 것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 곧 하나님의 능력인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나'이지만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나는 비결을 배웠다. 내 짐 이야기를 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내 자신이 질 것이나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짐을 지는 것이다. 아직도 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많으므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한 짐을 지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을 발견할 것이다. 자신을 주님에게 맡길 때에 자신의 마음에서 멀리 갈 것없이 바로 자기 안에 계시는 분을 발견할 것이다. 항상 “전능하신 이”를 우리의 어깨에 놓인 짐 아래 둔것은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
이 교훈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배울 수 있다. 그는 여기 저기 다니시면서 선을 행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셨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어 주셨으며 사단의 눌림받는 자들을 고쳐 주셨다. 많은 슬픔이나 심한 병을 가지고 그에게 온 사람은 하나도 위로를 받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마 8:17). 밤이 되어 무리를 잠자러 보낼 때에 그는 산이나 숲으로 가서 그가 의지하여 사는 아버지와 교통하면서 자신을 위하여 새로운 생명과 힘을 공급받기를 구하였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만일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확증하면―믿음은 우리에게 이 사실의 실재를 확증한다―다른 사람 안에서가 아닌 우리 자신 안에서 기쁨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다른 사람에 의하여가 아니고 오직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 비록 모든 사람이 실망하고 낙담할지라도 우리는 설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터―그리스도―가 견고히 서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비록 연약한 자 중에 가장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짐 지는 자―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조용히 그리고 불평없이 자신의 짐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짐도 지도록 하자. 불평많은 형제의 짐을 발견하여 질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이와같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연약한 자들의 기쁨은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 118:14)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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