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이 알리는 새 예루살렘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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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계 21장 9-22절 말씀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천사가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
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
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9-12)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작게 보이는 새 예루살렘이 가까이 이르러 오면서 큰 예루살렘
으로 나타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모습과 광경이 어떠하였을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11-12절) 고 했습니
다.
이제 그 성이 조금 더 가까워졌나 봅니다. 거대한 새 예루살렘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요! 자세히 보았겠지요!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더라’(12절)고 했습니다. 동편에 세 문, 북편
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 두 문들 위에는 이스라
엘 12지파 이름이 있습니다. 성광은 12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12 사도
의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더라’고 했습니다. 정방형의 새 예
루살렘이지요. 구약의 성소제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세기나’로 계시는 지성소의
장 광이 같은 것은 잘 균형잡힌 하나님의 품성을 상징한 것처럼 새 예루살렘 역
시 하나님의 완전한 품성을 균형지게 나타내고 있는 상징인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 성을 척량합니다.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고 했습니다. 한 스타디온은 약 185메터가 되는데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면 2,218킬로메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이는 한변의 길이인
지 4면 전체의 길이인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한편의 길이라면 551.4 킬로메터 라고 합니다. 이 길이를 한국인 사고로
생각하면 한 변의 길이가 1천리가 훨씬 넘는 거리인 것입니다. 1천리가 넘는 정방
형이라고 하면 상상하기 어려울만치 큰 성곽이겠지요. 그렇지요!
멀리서는 하나의 ‘보석’같이 보였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장과
광과 고가 같다’는 것입니다. 장과 광이 같은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지만 고
가 어떻게 551.4 킬로메터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싶습니다. 그렇지요. 그렇게
높게 쌓은 성이 있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이 있습
니다.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고 했지요. 이렇게 번역된 단어에 ‘비율’이라는 의
미를 두어 비록 길이와 넓이는 같지만 높이는 다른 치수와 조화된 비례를 이룰 것
이라는 해석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곽의 설명을 21장에서 마치면서 성곽의 12 기초석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21:18-20) 12보석이라는 설명이지요. 그리고 ‘성의 12문은 열두 진
주니 문 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이더라’(21:21)고 했습
니다.
장차 우리가 구원을 얻어 새 예루살렘에 간다면 성도님과 제가 그 문을 지나 그
정금거리를 걸어들어갈 것 만 같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12문, ‘문 마다 한 진
주요’라고 했습니다. 진주는 조개가 해치는 모래알의 아픔을 이겨내고 살면서
그 고통 중 에서라도 조개 안에 진주알을 생성한다 라고 하지요. 희귀한 보석이
지만 잘 알려진 보석입니다. 진주는 우리 성도 신앙을 상징하기에 알맞는 신앙
입니다. 바로 이 진주문, 하나의 진주란 한 충성심을 가진 신앙으로 이 세상을
이겨내고 드디어 이 문을 지나고, 이 금거리를 걷는다는 것이지요. 장하게 믿음
으로 승리한 상징이 ‘진주문’, ‘금거리’라는 표현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진주문을 들어서면 금거리가 펼쳐지는데 그 문, 그 거리가 좁은 것이겠
습니까! 아니면 넓은 길이겠습니까! 아마도 구원을 얻은 수많은 무리가 요족한
발걸음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문과 길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때 구
원받은 우리 모두는 참으로 감격스러워 할 것만 같습니다. 진주문을 통과하고
금거리를 지나면서 걸어들어가야지! 하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보고자
합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 중에 흔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도성의 전체가 영광이요
보석화 되면 어쩜 현란해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라고 하는 말입니다.
한편 하나님이 그것을 몰라서 잘못 만드셨겠는가! 싶기도 하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한가지 생각할 것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의 때에 성도는 영광화됩니다.
빛의 속력 보다 더 빨리 하늘나라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시력이 우주의 운
행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기억이나 생각들은 다 사라진지 오래입니
다.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로 주야가 없는 밝은 세계를 살아갑니다.
이때 적응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잘 적응하는 자연스러움이 있을 것
입니다. 왜 불가능할까요? 계 21장을 연구하면 바로 그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셨습니다! 재 창조입니다! 그렇지요!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
린양이 그 성전 이심이라’(계 21:20)고 했습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을 끝마치
면서 이상의 말씀이 새 예루살렘 설명의 마지막이 됩니다.
이제 하늘나라는 회복되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성전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계신 하나
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성전의 실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같이 계십니다! 아멘! 이제 남은 삶은 영원한 세월이 되어 주
님과 함께 사는 사랑의 삶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다음에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계속하여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평안하세요!^
이 글을 읽는 분께서 꼭 우리 모두 함께 하늘 새 예루살렘까지 같이 가서 영원
히 함께 사실 수 있게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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