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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행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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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당시에 유대 광야에서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짧지만 가슴속을 파고

드는 기별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가로 모여들었고,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하

고, 자복하고 허름한 선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았다. 이

비슷한 일이 지난 주 미 동남부 애틀란타에서 있었다. 


처음 이틀은 종말 시대의 재림 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나흘은 행1:8절의 성령

충만에 관한 기별을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집회가 성황을


이루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말씀을 경청하면서 느낀

것은 기별자가 재림 성도로서 성결한 기도의 삶을 사시는것

같았다. 세속적인 정치나, 스포츠, 예화도 없었다. 그런데도


말씀에 권세가 있어서 청중들이 모여들었다. 우뢰와도 같은

회개하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청중은 떨리는 마음

으로 그 기별을 듣고, 아멘으로 회답하였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다 침례 요한처럼, 엘리야 처럼 하늘의

불을 강단에 붙이기를 원한다. 두 분 모두 불을 뿜기 전에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깊은 시간들을 가졌었다.


제 각기 할 일을 다 해가면서 사람들의 눈을 속일수는 있어

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수가 없는것 같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나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야, 그 때 비로서 십자가를 대표하는 자로서  단상에 설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이

런 분들을 찾고계신다. 모세, 엘리야, 침례 요한같은 사람


을 말이다. 아직도 그분 말씀의 여운이 귀에 쟁쟁하다.

뭔가 가슴속에서 아직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계속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말씀을 들었던 우리들


모두의 공감이었을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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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도 신성한 목회직을 감당해야 하는 분들 역시 고민이
많을 것이다. 기별보다 중요한 것이 어쩌면 기별자이다.
뜨거운 불을 강단에 붙이려면, 먼저 메신저에게 불이 붙어
야 한다. 말씀 중간에 시우단비 님께서 요즘 교회와 교우님

들이 너무 쉽게 신앙을 한다고 꼬집었다. 잡신을 섬기는
무속인들도 접신을 하기 위하여 밤 12시, 새벽 3시 야심
할 때도 정성을 다해 명산대천을 찾아 다니며 정성을 드
려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저 자신의 영성을 저해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가장 보편적인 습성이다.  TV 시청, YouTube 와 Face
book 같은 Social Net Work 과 소통이다. 이것들 다
아무것도 안해도 먹고 사는데, 당장 지장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을 하면 하루해가 뭐
후딱 가버린다. 그러다보면 기도가 짧아지고, 말씀을 등한
히 하게되고, 차츰 차츰 영성이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작아진 영성에 불이 붙을 일이 없어진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가 지나고, 한 달 두 달, 해가 바뀔 때가
되면 자신도 알고, 가족들도 알고, 교우들도 다 알게 마련이다.
뒤 늦게 잔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회복이 될리가 없다. 어라
이게 왜 이러지? 어디서 부터 잘못이 됐는지? 다시 시작을 해

봐야 하겠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발등에 불똥이 떨어
진 것이다. 이제라도 발을 빼려니, 세상 재미에 깊이 빠져서
여간 빠지지를 않는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눈물로
서 회개하고, 자복하며 주 앞으로 나가려 한다. 주여! 나를 불쌍

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지금이 돌이켜야 할  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속이 다 꼶아 터지고 암 덩어
리가 배 밖으로 흘러 나왔는지도 모르고, 세상 쾌락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어떤이는 그런줄도 모르

고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와!  이거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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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제 삶에 있어서 고난은 축복 이었습니다.
    고난은 언제나 무릎을 꿇게 만들었습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 (마태5:3) 부자는 아무런 영적 필요를 몰라요.

3. 살아보니 인생이 한방에 가네요!  그래서 저는
    노령에 접어 들수록 수시로 무릎을 꿇습니다.

4. 언행심사를 조심하며 살아요. - 혹시라도 잘못
    된 Era가 날까봐요 그런데도 "달아보면 늘 부족"
    하니, 이걸 어쩌면 좋겠습니까? 무릎을 꿇습니다.

5. 저의 부족함을 주께서 채워 주실줄 믿습니다.
 하루에 스므번쯤 주의 기도를 부르며 주께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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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이고야, 어제는 이웃에 구도자 분이 쑥을 뜯으러 오셨다.
달래도 캐고, 부추도 베고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그런데
오늘은 권영기 선생님 친척분이 다른 친구들 두분을 모시고

오셨다. 쑥, 신선초 나물, 갓을 뽑으시면서 얼마나 좋아라
하시는지?  지난 겨울에 미국 농장에서 얻어 온 메주 콩도
얼마큼씩 나눠드렸다. 하고싶은 욕망들이 다 각각이셔서

뒷 바라지를 하고 났더니, 힘이 쭉 빠진다. 주변의 구도자
들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몇일 간 모아 놓았던

계란 두 줄, 쑥 떡 몇 조각과 식혜 한 잔씩을 대접해 드렸다.
그냥 여기 머믈러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신다.  콘크리트
숲 속에 사시다가 자 목련이 피는 산골 집이 마냥 평화롭게

만 보이시는 가보다. 초가 삼간이지만 신선한 야채와 나물
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시선이 평안히 머믈다가 웃음을
한 아름씩 품고가는 뒷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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